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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꿈
등록일
2006.01.10 00:00
조회수
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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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지난 10월 초순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갔던 동생이 둥그런 상자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동생은 그것이 친구의 ‘병아리 부화기’인데, 너무도 신기해 한 번 써 보고 싶어 빌려왔다고 했다. 순간, 나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체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굉장한 물건이라는 기쁨과 전율에 휩싸여 계속 웃음만 지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키우는 일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 조그만 동물이 사람과도 같이 먹고 움직이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부모님을 졸라 병아리, 토끼, 햄스터 따위의 애완동물을 수도 없이 길렀다. 그러나 철없는 꼬마가 훌륭히 해낼 수 있을 만큼 동물 사육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키우던 동물들은 나의 관리 소홀로 인해 모두 열흘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어갔다. 결

국 나는 사육의 실패와 애완동물의 죽음을 되풀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마음 한 곳에 응어리져 있는 것은 바로 병아리 사육의 실패다. 지금껏 가장 많이 죽게 한 동물이라는 죄책감도 있거니와, 다른 동물들은 훗날 철저한 준비 후의 재시도로 모두 1년 이상 키워냄으로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으나, 병아리만은 이미 유행이 지나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병아리 사육의 실패는 지금껏 나에게 한으로 맺혀있게 되었다.

그런데 드디어 10년 가까이 맺혀 있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병아리 부화기에 대해서는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내부의 환경을 부화에 적합한 환경으로 유지시켜, 유정란을 넣어 두면 3주 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최고로 경이로운 체험을 나에게 선사해 줄 물건인 것이다.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일이었다.


동생이 가져온 부화기는 <알콤> 이라는 국내 회사 제품으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결과, 타사 제품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이 굉장한 물건은 온도 ․ 습도 조절, 환기와 같은 기본적인 환경 조성 기능뿐만 아니라, 자동 전란기능, 이상 현상 감지 ․ 경고 기능 등 갖가지 부가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찌나 완벽하고 세심하게 제작되었는지, 알을 품는 암탉과 다를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즉시 유정란을 구해 3주의 ‘D-day’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주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나, 매일 기쁨과 기대에 휩싸여 있었기에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병아리 부화와 사육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느라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또한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나의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 그 감동적인 순간에 내가 그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부화기 안에 고이 넣어 둔 유정란들을 바라보며 곧 깨어날 작은 생명들을 생각하느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화의 순간을 지켜보는 기분이 어떨까 상상하며 동생과 함께 하루하루 부화예정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3주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패한 것이다. 너무도 아쉽고 가슴이 아팠다. 동생도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20%라는 높은 실패율을 감안하면 심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재시도 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동생과 나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한 번 성공을 향한 시도를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딱 한번만 사용하고 돌려주기로 사전에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부화기는 다시 원래 주인인 친구의 동생에게 돌려주어야만 했다. 워낙 고가품인지라 조금 더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렵고, 직접 장만하자니 비용 문제로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성공의 꿈은 잡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의 실패를 발판 삼아,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는 과거의 아픈 추억 때문이기도 하나, 장차 생명공학 과학자를 목표로 하는 나에게 생명의 신비로움을 몸소 체험하는 것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미루었던 꿈을 이루는 날, 이를 모든 생명의 신비로움을 동경하고, 그 비밀을 연구하려는 나의 목표를 향한 첫 걸음으로 삼고자 한다.